인생의 마이너스 통장 : 행복에 관한 조언/ 서은국 교수
- "행복한 직장인은 비현실적" 30년간 행복을 연구한 서은국 교수의 말입니다.
- 불행한 요소를 없애는 대신 즐거운 일을 더 많이 하라고요. "행복과 불행은 별개이기 때문"이죠.
- "내향인일수록 사람을 더 자주 만나야 한다"고 조언해요.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행복의 원천은 '사람'이라고요.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까?
베스트셀러 『행복의 기원』을 쓴 서은국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찾았습니다. 일반적인 노벨상 수상자의 논문 피인용 수는 3~4만 회. 그런데 서 교수의 논문 인용 횟수는 9만 회입니다. 행복심리학에서는 대가라 불릴만한 최고 권위자죠.
하지만 기대와 달리 첫 대답부터 희망적이진 않았어요. "행복한 직장인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죠. 정말 직장인은 행복하기 힘든 걸까요? 그럼 행복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인생의 마이너스 통장을 없애는 데 집중하지 말라"는 서은국 교수에게 그 답을 들었습니다.
"행복은 내가 서랍 안에 넣은 그게 다예요"
Q. 단박에 직장인은 행복하기 힘들다고 하시니 조금 당혹스러웠습니다(웃음).
직장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난센스 아닌가요? (웃음) 물론 행복하면 정말 좋겠죠. 하지만 직장이라는 곳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인터뷰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나, 고민했습니다. 하나 마나 한 소리가 돼버릴까 봐요.
Q. 그래도 해주실 말이 있다면요?
우선 직장을 너무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정 모든 게 안 맞고, 불가항력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과감하게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옵션일 수 있어요.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가만히 앉아 도인이 되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어느 정도까지는 긍정적 사고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큰일이 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무작정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메시지가 만연해요. 특히 SNS에서요. 그런 초단순 논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과격하지만, 긍정적인 사업가 중 망한 사람도 적지 않아요. 반대로 아주 부정적이지만 성공한 사람도 많죠. 그런 이야기는 우리에게 잘 안 전해질 뿐이에요.
Q. 또 다른 게 있다면요?
직장인이 불행한 대표적인 이유는
성공과 행복을 혼용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사람의 "행복해지고 싶다"는 말 속에는 "성공하고 싶다"는 속뜻이 담겨 있어요. 하지만 성공과 행복이 항상 손잡고 같은 길을 간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물론 같이 갈 때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갈림길이 나타나기도 하거든요.
특히 성공으로 가는 과정, 즉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들을 제치고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행복감을 떨어뜨리는 수많은 일을 수반해요. 주말에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대신 일에 몰두하고,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그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회사의 작동 원리는 행복의 매커니즘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이런 마인드셋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지금 승진이라는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릴 거야. 대신 행복감은 전보다 떨어질 수 있어'. 그걸 인지하고 하느냐 안 하느냐는 작지만 큰 차이에요. 인생의 허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죠.
Q. 그렇다면 행복은 언제 느끼나요.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싱거울 정도로 단순해요. 행복의 본질인 '쾌감(pleasure)'을 늘리는 거죠.
행복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얻은 생존 도구예요. 나에게 이익이 되는 상황을 마주하거나 자극을 받으면 긍정적인 정서를 느끼죠. 쉽게 비유하면 고기잡이 배에 달린 레이더 같은 거예요. 고기 떼가 오면 선장에게 신호를 주듯, 우리 뇌도 쾌감이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감을 올리려면 즐거움(쾌·pleasure)을 느끼는 경험을 자주 반복하면 돼요. 아주 간단하죠. 누군가에게는 먹는 게 즐거움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야구 경기를 보는 걸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의미없어 보이는 것들이죠. 문제는 스스로도 그걸 별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꾸 서랍 안에 집어넣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행복은 내가 방금 서랍에 넣은 그게 다예요.
그게 제가 30년간 연구하며 깨달은 행복에 대한 사실이죠.
Q. 회사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어떤가요? 이를테면 성취감 같은 것요.
성공하면 생존에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기댓값이 있기 때문에 쾌감(성취감)을 느낀다고 볼 수 있어요. 경제적인 능력이 올라가고, 주변 사람이 늘어나니까요. 문제는 성취감을 느껴야 할 때 느껴야 한다는 거예요. 어떤 경우에는 생존에 불리할 수도 있거든요.
이해를 위해 질문 하나 드릴게요. 레이더의 성능 중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정확성이에요. 만약 고기 떼가 없는데도 자꾸 신호가 켜지면 어떻게 될까요. 없느니만 못할 겁니다. 성취감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팀의 팀워크가 다 깨지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데도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건 뇌의 레이더가 고장 난 거예요. 겉으로는 생존에 유리할 것 같지만 정작 내가 힘들 때 곁에 남아줄 사람은 하나도 없을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지능이 중요해요. 어느 정도까지 달리고, 어디서 한숨 돌려 주변을 살펴볼지 객관적인 판단을 해야 하죠. 심리학자가 잘 안 쓰는 단어이긴 하지만 일종의 '지혜'가 필요하달까요(웃음).
인생의 마이너스 통장 없애도 행복해지지는 않아
Q. 행복에 대한 오해를 자주 접하시죠?
그런 오해 중 대표적인 게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하다'는 거예요. 하지만 불행 요소를 없앤다고 꼭 행복해지지는 않습니다. 둘은 별개에 가까워요.
Q. 이유는요?
많은 사람이 내가 가진 결핍을 채우고, 불안정한 요소를 없애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인생의 마이너스 통장을 없애는 데 집중하죠.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결핍을 채우고 불안정한 요소를 지우는 데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하는 사람일수록 행복하지 않아요. 그게 '언해피'한 사회의 압도적인 특성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불행 요소에 집중하는 대신 반대로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을 자주 반복하는 게 행복감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인생의 마이너스 통장 잔고를 없애려고 하기보다 즐거운 일을 더 자주 해야 행복합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 결핍을 채우고, 불안정한 요소를 지우는 '안정 지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거예요. 대표적인 게 노후 준비죠. 모두가 준비된 노후를 맞이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어요.
또 불안정한 걸 극도로 위험한 것으로 여깁니다.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받지 말라는 공익 광고가 쏟아지고, TV 방송 메인 시간대에는 상담 프로그램이 방영돼요. 주변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하고, 모든 사람을 어딘가 문제 있는 사람, 고쳐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죠. 이런 사회에서는 행복해지기 정말 어려워요. 설령 우리가 아무 문제 없는 상태로 90년을 산다고 하면 정말 행복할까요?
그런 상태의 확실한 다음 챕터는 '권태'일 거예요.
권태는 이미 한국 사회를 덮쳤어요. 많은 사람이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시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죠. 과하게 안정적인 사회, 이게 제가 본 지금 우리의 모습이에요.
사람은 귀중한 자원, 외향인이 평균적으로 더 행복한 이유는
Q. 그럼 어떻게 하면 행복이 극대화될까요.
다윈이 150년 전에 아주 기가 막힌 이야기를 했어요. "생명체의 행복은 전적으로 움직임과 관련 있다"는 거죠. 거꾸로 얘기하면 행복은 가만히 앉아 있는 걸 못 견디는 거예요. 모험심이 있고, 새로운 걸 시도하고, 맛봐요. 그러다가 실패도 많이 하고요.
다시 말하면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것, 즉 자극 추구에 대한 욕망이 크죠. 이게 행복한 사회, 행복한 개인의 압도적인 특성이에요.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인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행복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고요.
Q.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쉽게 말해 외향적인 사람은 '자극 추구쟁이'예요.
새로운 만남을 좋아하고, 시도를 하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행복을 느끼기 유리한 상황에 자신을 자꾸 갖다 놓는 특성이 있다는 거죠. 다른 말로 '자극 먹는 하마'예요.
인간에게 가장 재미난 자극은 뭘까요? 사람이에요. 어떻게 보면 외향인은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주는 자극을 좋아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외향적인 친구가 "오늘 뭐 해?" "점심 뭐 먹어?" 시시콜콜 물어봐도 너무 좋아하지는 마세요.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웃음).
Q. 내향인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죠?
우선 풀어야 할 3가지 오해가 있어요. 첫째 내향적, 외향적이라는 유전적 특징이 직접적으로 행복을 좌우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다만 행복으로 가기에 조금 더 유리한 도로(외향적인 특성)가 있을 뿐이죠.
두 번째는 내향인이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이건 아주 큰 오해인데, 최근 연구들을 보면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면 행복감이 더 많이 상승하는 부류가 내향인이에요. 어떻게 보면 내향인이 사람을 더 좋아한달까요(웃음).
그러면 내향적인 사람은 왜 사람 만나는 걸 피할까요? 지나치게 걱정이 많기 때문이에요. 지레 겁먹는다고 할까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필수적으로 느끼는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을 과대평가하는 거죠. 가볍게 즐기고 돌아오면 되는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안 좋게 보면 어떡할까' 걱정해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대신 혼자 넷플릭스 보는 선택을 오늘, 내일, 다음 달까지도 계속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내향적일수록 사람 만나려는 노력을 더 할 필요가 있어요.
마지막은 그렇다고 해서 외향적인 특성이 더 좋다는 건 절대 아니라는 거예요. 만약 외향적인 특성이 모든 방면에서 유리하다면 지구에는 외향인만 가득해야겠죠. 하지만 이들이 가진 약점도 많아요. 전쟁이 나면 호기롭게 먼저 뛰쳐나가는 사람들이 누군가요? 외향적인 사람들이에요. 사냥도 더 많이 나가죠. 확률적으로 생존율이 낮아요. 그런 큰 그림을 무시하고 아주 작은 창을 통해 행복 하나만을 보면 외향적인 사람들이 확률적으로 더 유리하다는 이야기일 뿐이죠.
행복은 광합성 같은 거예요.
좋고 나쁜 게 아니라 햇빛을 더 좋아하는 식물이 있는 겁니다.
그런 특성으로 인해 운 좋게 얻어지는 부산물이 행복이죠.
돈 좇을수록 행복감 떨어져… 자기확신 키우려면
Q. 공통적으로 '사람을 만나면 행복도가 올라간다'는 거네요. 왜 사람이 그토록 중요할까요.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가장 큰 잣대는 생존과 재생산이에요. 그중 호모사피엔스가 수십만 년 동안 생존하고 재생산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자원이 바로 '타인'입니다. 혼자됐던 사람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불리했어요. 사자에게 잡아먹히거나, 재생산을 못 하니까요.
다시 말해 타인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에요. 사람을 만날 때 행복도가 크게 오르는 건, '귀한 자원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신호인 거죠.
Q. 간혹 쾌감을 주는 자극 중에는 생존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것도 있어요. 예를 들면 SNS 중독 같은 것요. 그런데도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뭘까요?
우선 SNS 중독의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사람'이라는 자극에 반응한다고 볼 수 있어요. 다만 우리 뇌가 휴대폰 속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지 못하는 거죠. 우리 일상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크게 바뀌었던 적이 없거든요. 그런 부적응적인 게 아직 많아요.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알아도, 정서적 반응은 아직인 거죠. 결국 뇌가 언제까지 속느냐의 문제예요. 1만 년, 5만 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가짜와 진짜를 감별하는 뇌와 그렇지 못하는 뇌는 재생산에 차이를 내게 될겁니다.
최근 흥미로운 연구 결과 중 하나는 돈과 관련된 건데요. 실험실에서 사람들에게 돈을 만지작거리게 할수록, 즉 돈 생각을 할수록 사람의 중요성이 떨어져요. '네 도움은 없어도 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행복의 원천인 사람의 역할을 많은 부분 대체해요.
이런 현상이 비극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돈이라는 종이 뭉치 자체는 생물학적으로 나에게 어떤 행복감도 줄 수 없기 때문이에요. 기쁨을 주는 건 사람인데, 돈을 쥘수록 즐거움의 결정적 원천을 멀리하고, 타인의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돈은 늘지만 장기적으로 행복감은 계속 떨어질 겁니다.
이런 문제들이 앞서 이야기한 '왜 성공해도 행복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어요. 사람과 돈은 같지 않고, 돈의 가치를 크게 느낄수록 사람의 가치, 중요성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오니까요.
Q. 행복의 결정적인 요인이 유전이라면, 즐거운 경험을 자주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 외에 또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안정을 지향하고 남들과 같아지려고 하는 건 어쩌면 자기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걸 해도 될까?' '이러다가 무리에서 이탈하는 건 아닐까?' 불안하죠. 하지만 저는 확실히 덜 그런 편이거든요(웃음).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상처받고 밤잠 못 자고 그러지 않아요.
유전적 요인을 배제하고 나는 왜 그런가, 생각해보면 결국 책이에요. 주변에서 내가 하겠다는 일을 의심하고 반대해도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해주는, 저의 숨은 지지자죠. 아주 고리타분한 답이지만요.
출처: follin